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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로창고극장 재개관 기념공연 <빨간 피터들> 관객과의 대화

  • 작성일2018-07-30

 


삼일로창고극장 재개관 기념공연 [빨간 피터들] 관객과의 대화

 

일시 : 7.01(일) / 7.08(일) / 7.15(일) / 7.22(일) 공연 종료 후

사회 : 이경성 (삼일로창고극장 운영위원)

대담 : 각 공연 출연 배우 및 연출

* 본 내용은 4회에 걸친 관객과의 대화 내용 일부를 주제별로 엮어 편집하였습니다.

 


 

[빨간 피터들]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배경

이경성 안녕하세요. 삼일로창고극장 운영위원 이경성입니다. 1975년에 개관했던 삼일로창고극장이 많은 연극사의 족적을 남겼지만 계속 민간에서 운영이 되면서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곱 번, 여덟 번의 폐관 위기가 있었는데요. 이번에 서울시에서 삼일로창고극장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서울문화재단에서 위탁운영을 하게 되었고요. 운영의 방식을 민간 운영위원을 뽑아서 2년 임기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삼일로창고극장 운영위원들이 함께 모여서 처음 오프닝을 어떻게 시작할까 하다가 개관기념 공연으로 <빨간 피터들>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연극을 공부하던 학창시절에 우연히 안치운 연극평론가가 쓰신 『추송웅 연구』라는 책을 보게 됐습니다. 그 책에는 추송웅 배우에 대한 삶과 그의 업적도 있었지만, 그를 추앙하거나 신격화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 또는 연극 자체에 대해서 ‘이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이것이 무엇이기에 삶의 무게감을 지면서 이것들을 사람들이 해 나갈까?’에서부터 ‘삶과 연극의 긴장관계가 무너졌을 때 결국 연극배우가 어떻게 파괴되는가?’와 같은 질문들을 굉장히 냉철하게 분석한, 어떻게 보면 최초의 배우에 대한 평론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날 연극을 하려고 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또 하나의 질문과 영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의 것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연극을 해나가는 사람으로서 왜 무대에 서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멀리 끌고 나가고자 했습니다. 책 『추송웅 연구』와 추송웅 배우가 카프카(Franz Kafka)의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들어서 이 극장에서 굉장히 대 히트를 했던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을 바탕으로, 저희는 ‘각자의 방식으로 여기서 어떤 질문을 갖고 뭔가 해보자’에서 출발하였고, 신유청 연출을 시작으로, 김수희 연출, 안무가이자 춤꾼인 김보람 안무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적극 연출, 이렇게 네 팀이 일주일 간격으로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각각의 공연 컨셉과 형식이 나오기까지의 고민과 과정 -

신유청 『추송웅 연구』 책에 추송웅 배우가 공연을 마치고 술에 취해서 집에 돌아가는 골목길에 노상 방뇨를 했는데 경찰한테 걸리고, 다리를 하나 들고 쌀 테니 지나가는 개로 봐달라는 에세이 글이 있어요. 그런 모습에서 배우의 돌아가는 길의 쓸쓸한 인상을 하나 가지고 있었고요. 또 하나는 추송웅 배우가 작품을 준비하면서 동물원에 가서 원숭이를 하루 종일 보고 있었다는 내용이 남았어요.

그것과 별개로 카프카의 책들을 여러 개 봤는데, 당시 추송웅 배우가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를 공연으로 그대로 한다고 했을 때 관객들이 과연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까를 생각해보니 거의 아무도 못 알아듣고 상징적 의미만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것의 의미를 분석하니까 그때 당시 카프카가 느꼈던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 유대인으로서 느꼈던 정체성으로서의 끊어짐, 단절 같은 것. 아버지는 유대인을 포기하고 서구 유럽 사회에 동화되길 원했고, 카프카는 동부 유럽권의 극단적인 연극들을 보면서 유대인으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질문하면서 혼란을 느꼈는데요. 그런 것들이 하준호 배우와 만나고, 하준호 배우가 살고 있는 모습들. 이 세 인물을 보면서 공통적인 부분을 찾게 됐어요. 그래서 어떤 한 부분만 표현한다기보다 이 모든 것들을 다 녹여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작품이 명확하다기보다는 상징들로 채워봤습니다.

 

김수희 1970년대에 추송웅 배우가 하셨던 대본을 못 구한 상태에서, 작품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배우 캐스팅부터 먼저 해놓고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배우에 집중해보자’라는 소주제가 있었거든요. 저는 실험극이나 부조리가 약해서 제 스타일대로 강말금 배우와 상의를 하면서 토론을 했습니다. 『추송웅 연구』 책을 중심으로 했는데,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책을 요약하는 과정이 공연을 만드는 전 단계이기는 한데, 걔가 무대에 올라오기에는 저희들의 공부만 되는 거더라고요. 관객과 얘기할 수 있는 지점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강말금 배우가 카프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카프카에 대해서 매력을 느끼고 그 사람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다고 저한테 먼저 제안을 해줬어요.

공연에서 자막으로 나온 모든 글이 강말금 배우가 카프카의 전집이나 편집글에서 추려온 것이에요. 정리하다 보니 이건 그냥 배우의 역할놀이로 끝나는 거죠. 배우가 하는 역할이 연출의 오더를 받아서 그 역할을 해내기만 하는 수동적인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 프로젝트의 소주제인 ‘배우는 무엇인가’라는 존재에 대한 것과 여자라는 것, 카프카를 시킴에도 강말금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했기 때문에 여자를 드러내보자 했어요. 여자가 카프카를, 피터를 하는 당위를 찾아보고 싶었어요.

사실 당위는 못 찾았습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웃음) 이경성 연출님은 유연하게 잘 넘어갔다고 포장해주셨지만 사실은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갔어요. 그래서 조금 어색하고 촌스럽지만 자막을 통해서 관객분들한테 여자로서, 강말금 배우로서의 모습들을 드러내보고 싶다고 대놓고 써서 연출했던 것 같습니다.


 

김보람 작년 9월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연극 쪽은 잘 모르니까, 추송웅 배우에 대해서는 섭외된 후에 처음 알게 됐어요. 사실 제일 조금 부러웠던 게, 그때 시대라고 하면 1970~1980년대일 텐데요. 이런 공연 문화가 많지 않았을 때, 이 극장에서 몇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는 얘기를 들어서 부럽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뭘 해야 하나 했는데요. 어떤 주제를 하지? 조금 욕이 팍 나오더라고요. 순간 <관통시팔>을 하자 해서 주제가 정해졌고 아무 생각 없이 저 하고 싶은 대로 만들었습니다. (앞으로의 솔로 작업 여부에 대해) 일단 솔로는 당분간 안 할 것 같고요. (웃음) 몸도 힘들지만 이게 제가 제일 어려웠던 게 열여덟 가지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냥 열여덟 가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열여덟 개가 하나의 공연으로 가는 게 힘들어서요.

 

적극 저는 연극은 당연히 배우가 중심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지점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어떤 음악 장르에서 연극이 필요한 것, 미술 장르에서 연극이 필요한 것, 제가 그런 쪽에서 연극을 하는 작업을 했어요. 이번에는 배우의 연기 자체를 하나의 장르로 존중해서 그것을 절대적인 일순위로 놓고 연극을 만드는 것. 이게 조금은 다를 수 있는데요. 기존 연극들은 당연히 배우의 연기가 중심에서 모든 것을 함께 복합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이번에는 특히나 더 배우의 연기를 전체적인 계획의 주도적인 역할을 주는 게 아니라, 배우의 연기를 전제하고, 시작하고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최용진 선생님이 접근하시는 방법을, 어떻게 접근하시는지 관찰을 하고 그것을 우선화한 다음에 작업을 한 거죠. 그래서 즉흥적이고, 와일드하고, 이런 느낌이라기보다는 움직임도 적으시고, 주의집중을 해서 섬세하게 만드시는 편이어서요. 그러면 움직임이 없이도 뭔가 성립할 수 있는 틀을 만들면 좋겠다. 그래서 이렇게 의자를 쌓게 되었고요. 의자 하나에서 이렇게 올려놓고, 그런 식의 접근들이 진행됐던 거죠.
 



공연 제목이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김보람 추송웅 배우가 여기서 이 무대를 가득 채우면서 공연을 하는 것을 보면서 같은 공연자로서 ‘아 시발 진짜 부럽다’ 이런 감정이 확 들었어요. 이런 감정이 먼저였고, 그다음에 열여덟 개의 안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부러움도 하나의 질투잖아요. 제가 ‘시발’이라고 느낀 건 질투인데. 그 감정도 저한테는 좋은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이렇게 만들자 하고 바꿔서 작업했습니다.

 

적극 최용진 선생님은 십 년 정도 러시아에서 연기 공부를 하고 돌아오신 분이에요. 그때 화술 수업이 마지막 학기가 되면 단편 소설을 읽는 발표를 한다고 해요. 러시아의 학생들이 발표하는 걸 듣고 있는데, 러시아판소리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그 얘기가 생각나서 작품 제목으로 제안했습니다.

 

최용진 한 사람이 나와서 소설을 읽으면, 소설 안에는 여러 인물들이 있잖아요. 가능하면 그런 텍스트를 선택하니까요. 그러면 한 사람이 여러 인물을 하는데, 그 시간에 배웠던 연기술을 가지고 해결을 하죠. 그걸 보면서 판소리에서 그렇게 하는 것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경험을 얘기했더니 이렇게 넘어가게 됐어요. 그래서 재밌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선택지 중 왜, 이 배우였을까

신유청 일단 학교 다닐 때 제일 친했던 사람이에요. 서로 비슷한 점이 있는 게 아니고 전혀 다르지만요. 그래도 이 친구도 절 좋아하는 것 같고, 저도 좋아하고요. 모노드라마고 정확한 텍스트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서로 이해를 제일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요. 이 사람의 장점들이 부각이 되어야 하는 게 1인극에 유리한 지점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김수희 잘하니까요. (웃음) 제가 워낙 좋아하는 배우고요. 이전 작업이 드라마 창작극이었는데요. 드라마의 구성 같은 것에서 굉장히 빛나는 아이디어를 주는, 드라마트루그적인 성격이 강한 배우였어요. 그래서 대본이 없는 모노드라마를 만들 때 가장 적합한 배우라고 생각해서 캐스팅했고요. 역시나 강말금 배우가 아니었다면 구성이나 아이디어 부분에서 힘들었을 것 같아요.

 

김보람 저는 처음 제안을 받을 때부터 출연하고 작업하기로 되어 있었어요. 사실 저한테는 너무 좋은 경험이었던 게 안무를 매년 한 네, 다섯 작품을 하고, 최근 한 사오년 동안 매년 거의 쉴 틈 없이 안무 작업만 했거든요. 저에게 이렇게 작품을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이 제가 무용을 하고, 거의 이삼십 년 춤을 추면서 저에게 준 첫 작품입니다. 그래서 공이 많이 들어갔고 당분간은 안할 생각입니다. (웃음)

 

적극 저는 배우의 화술로 진행하는 연극을 꺼리는 편이었고, 한동안 그런 작업을 안 하다가, 이번에 기획의도를 듣고서 이번에는 전통적인 연극을 정면 대결해서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배우를 찾았고요. 최용진 선생님을 소개받게 되었어요.

 

작품 마지막 지점에서 흘러나온 음악

신유청 마지막에 나온 음악은 최근 술자리에서 알게 된 가수의 곡인데요. 칠레의 빅토르 하라(Victor Jara)라는 가수로, 칠레 민주화 운동에서 외친 자유와 평화, 그리고 희생 같은 것을 표현했어요. 그 음악을 들으면서 저도 신선한 음악을 들어보고 싶었어요.

 

이경성 이건 제가 추가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저희가 이걸 연습하는 도중에 『추송웅 연구』를 쓰신 안치운 평론가께서 연구실로 초대를 해주셨어요. 와인을 마시면서 책에 대해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이 음악을 트셔서 저희에게 소개를 해주셨고 그게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로 장면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김수희 제가 칸예 웨스트(Kanye West)를 굉장히 좋아했었습니다. 지금은 아니고요. 그 라는 노래 가사들을 좋아하는데요. 마지막에 인트로가 강렬하잖아요. 그 음악의 인트로의 느낌을 좀 가져왔어요. 가사가 전달하는 내용보다는 마지막에 자막을 강력하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결국 저희가 카프카를 하건, 피터를 하건, 강말금을 하건 카프카 글에 대한 연극이잖아요. 강말금 배우가 발췌해준 글 중에 그게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엔딩으로 넣었고, 예전에 좋아했던 곡의 인트로의 느낌을 가져다 붙였죠. 안 그래도 저희 영상 감독님이 가사가 강렬하다고 공연 때문에 만든 곡처럼 가사가 붙는다고 해주셨는데 그런 의도는 없었어요. 인트로의 느낌을 따왔습니다.

 

이경성 공교롭게도 첫 번째 공연인 <추ing_낯선 자> 관객과의 대화 마지막 질문도 음악사용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두 작품 다 코드가 강한, 멜로디가 강력한 것을 썼는데요. 장단은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그걸 할 수 밖에 없는 선택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음악에 대한 질문이 두 공연 다 나온 게 흥미롭네요.


 


관객이 어떤 인상을 받기를 기대했는지 - 결국 해석은 관객 몫이겠지만

신유청 작품을 만드는 것도 그렇지만, 제 주위 사람을 봤을 때도 요즘 삶에 화두들이 관계들이 변해가는 것들하고, 저 역시도 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잡아야 하는지가 화두였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작품 리서치를 할 때마다 그런 것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카프카나, 추송웅 선배나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결국 자신이 자기 안으로 들어갔을 때 발견되는 부분들이 있지만, 타인을 통해서 그런 것들이 형성되는 것 같아요. 길이 막혔을 때 하늘을 보고, 사방을 둘러보면서 스스로를 형성해 가는 게 배우로서도 또 삶을 사는 사람한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요. 원숭이는 사실 저는 얘가 이 원숭이로서 하는 말이 다 무슨 말인지 알거든요. 근데 결국 이 안에 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 얘기를 모르기 때문에 웃기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로 몰라주는 관계들이 있고요. 또 둘만 연습을 하니까, 이 친구가 사느라 바쁜데 전화가 엄청 많이 와요. 얘기를 같이하다가 전화가 딱 오면 제가 느껴지는 단절됨이 있었고요. 이야기하는 전화 내용도 궁금하고, 표정도 재밌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타인과 자신과의 관계들, 비슷한 사람들끼리 있을 때도 느껴지는 외로움들. 관계에 대해서 집중을 많이 했습니다.

 

 

‘너는 카프카도 아니고, 피터도 아니고, 여자’ - 사회, 여성, 성별, 젠더

이경성 강말금 배우님이 나오셨을 때 하이힐을 신고 나오시는데요. 제대로 걷지 못하시잖아요. 맞지 않는 틀을 하고 나오신 것 같은데요. 자연스럽게 맞지 않는 신발을 신자고 아이디어가 나와서 하게 된 건가요?

 

강말금 첫날에 제가 정신이 없어서 립스틱을 못 챙겨왔는데요. 사실은 총알이 얼굴에 한 번 지나가고, 다리에 한 번 지나가는데요. 절룩인다는 내용이 낭독에 있는데요. 그래서 얼굴에 한 번 지나가서 흉터가 생기고, 다리에 한 번 지나가서 절룩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첫 공연 때는 립스틱도 없고 해서 설명이 잘 안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절룩거렸습니다.

 

김수희 구두를 되게 좋아하는데 발이 아파서 잘 못 신어요. 구두를 신으면 기분이 좋고 예뻐졌다는 느낌, 자신감이 생겨요. 그런데 그걸 신고 다닐 수가 없는 거죠. 사람들은 구두를 신었을 때 예쁘다는 소리를 해줘요. 그래서 신고 싶고, 나를 드러내고 싶은데 나를 구속하는 느낌이 있어요. 여자들의 여러 장치들 중에 액세서리도 있고, 화장도 하고, 저를 드러내서 기분이 좋아지는데 동시에 저를 불편하게 할 때가 있거든요. 구두가 딱 그런 것 같아요. 말금 배우가 구두를 신자고 제안을 했죠. 의미들이 공연 안에서 드러났는지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으로 구두를 바라볼 때는 탐하고 싶은 마음과 버리고 싶은 마음 두 가지가 같이 느껴져서요. (...)

 

어떤 의도가 생기기 전에 이미 마음으로 여배우를 캐스팅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컨셉을 잡기도 전에요.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게 무엇이냐 하면 항상 ‘왜 나는 못 하지’가 있어요. 아무래도 아까 말씀하셨 듯 좀 섭섭하지만 저 역시도 남자 주인공에 대해 얘기를 하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이 모노만큼은 컨셉 잡기 전에 무조건 여배우를 캐스팅하고 고민하자고 생각했어요. 젠더에 대해서 불평등하다 이렇게 얘기하는 게 오히려 그게 불편하고요. 그냥 계속하는 거죠. 그런 시선 같은 게 그렇게 저한테 그렇게 준비되어 있지 않았어요. 늘 생각하거나 그렇지는 않잖아요. 문제가 닥쳤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식을 찾기 마련인데요. 꾸준한 교양과 지식이 쌓여서, 젠더 문제에 답을 얻어서 여배우를 캐스팅한 게 아니라요. 아유, 모르겠다, 여배우랑 한번 해보고 싶어. 어차피 다 남자배우들일 테니까. 이런 단순한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질문을 하신다면 계속 해보자라는 거죠. 어떤 답이나 결과를 두고 하는 게 아니라요. 여러 가지를 시도해서 가능성을 찾고 확장시켜보는 거죠. 강말금 배우가 카프카여도, 피터여도, K여도 상관없는 그런 공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일단 캐스팅부터 했습니다.
 



열여덟개의 춤, 김보람 안무가의 작업 방식

이경성 평소 김보람 안무가님을 개인적으로 좋아한 것은 안무가님이 가지고 있는 자유로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안무가님 개인 작업도 봤지만, 예전에 발레 베이스로 했던 안성수픽업그룹(APG)이라는 무용단에서 굉장히 정제된, 짜인 틀에 무용수로도 뵀고요. 다양한 무대의 그때그때의 어떤 순간의 집중을 해서 즐거움 또는 자신을 찾는 모습들이 굉장히 부러웠습니다. 공연 초반에 본인의 인터뷰가 약간 녹음처럼 나오는데요. 왜 춤을 추는냐는 질문에 즐거움이라고 얘기도 하셨고, 작은 프로그램북에 보면 너무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그 순간순간을 같이 집중해서 즐기자고 이야기를 하시고 있어요. 열여덟 개의 춤이 어떻게 구체적인 춤들이, 동작들이 찾아졌는지 간단하게 예를 하나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보람 사실 저는 안무를 하지만 동작에 좀 연연하지 않고 작업해요. 어떤 동작을 하느냐보다 언제, 어디서, 어떤 타임으로, 누가 하느냐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 작업을 실제로 시작한 것은 4주에서 5주 됐고요. 열여덟 개의 내용은 사실 작년에 다 잡았는데요. 그때 생각으로는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정작 작업 들어가니까 다 제 머리가 생각한 거지 제 몸의 말은 하나도 안 들어갔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작업을 시작하면서, 안무를 하면서 다시 열여덟 가지가 다 바뀌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재미있는 춤, 재미없는 춤. 웃긴 춤, 이런 식으로 쉽게 접근을 했는데요. 그런데 웃긴 춤을 만들려고 하니까 웃긴 춤이 뭔지 모르겠고, 슬픈 춤을 만들려고 하니까 슬픈 춤이 뭔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직접 하고 싶은 것들을 찾으니까 거기에 웃긴 것도 있고, 슬픈 것도 있고, 다 있더라고요. 사실 프로그램북의 내용은 저번 주에 다 정리가 됐어요. 글이 가장 마지막에 정리가 됐고요.

 

무용수로서는 퇴로가 없는 무대 자체의 소감

김보람 이 무대가 굉장히 스페셜한 곳인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선 무대 중에 가장 작은 것 같은데요. 그리고 관객분들도 이렇게 가까이에서 접하는 것도 좀 오랜만이에요. 저기 뒤에 공간(백리프트 공간)이 유일하게 숨을 곳인데, 저기를 저희끼리 리허설할 때는 방이라고 불렀어요. 집에 있는 물건들을 다 가져와서 방처럼 꾸며놨는데요. 저한테는 좀 더 프레시한 공간으로 느끼게 해줬고. 관객분들하고 가까이 있는데 굉장히 부담스럽지만 나름 재밌었습니다.

 

 

무대 위에 세워진 구조물, 의도

이경성 이 구조물 자체가 처음부터 있었을 것 같지 않은데요. 이게 만들어지고 여기 올라가서 여기에 갇혀서 하는 것이 처음 봤을 때는 감옥 같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이것 자체가 몸이 확장된 구조물 같기도 했는데요. 여기 올라와서 말을 했으면 좋겠다는 게 어떻게 납득이 되셨나요? 사실 보기에 굉장히 위험하기도 했는데요. 그걸 수용을 하면서 올라가신 건데요.

 

최용진 납득하고 올라가지 않고 그냥 했어요. (웃음) 되게 좋았어요. 구조물 없이 바닥에서 할 때는 힘들고 불편했는데, 기댈 게 있으니까 참 좋았어요. 그리고 나중에 연출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해줬는데, 그런 얘기들은 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적극 극장 측에서 이 극장을 하루 공연 전에 써볼 수 있는 날이 있을 것 같으니 써보겠냐고 했고, 저는 당연히 좋다고 하고 삼 주 전 쯤에 하루 들어왔어요. 그때는 극장의 의자 자체가 이거(스툴)였어요. 아마도 삼일로창고극장이 옛날에 의자가 이 형태여서 이것을 세팅을 하신 것 같았어요. 불편해서 이걸 어떻게 앉느냐고 해서 지금의 등받이 의자로 바뀐 거예요. 이게 극장의 의자였던 거죠. 들어왔더니 이 의자가 있고, 저희가 있었던 거죠. 예를 들어서 눈치 없는 행동이라고 해야 할까요? 술을 마시고 이런 것을 할 때, 바닥에서 하면 잘 안 보여요. 기껏해야 백 리프트가 있는 공간인 거죠. 나머지는 끝에서 답답하게 해야 해요. 그래서 우선 올라가는 게 좋고, 그래서 우선 의자를 쌓아봤어요. 처음에는 이렇게 안 쌓고, 한 단만 쌓아봤는데요. 액션이나 이런 것들을 자극적으로 안 하시고 납득이 되고, 준비가 되고, 계획이 되어야 하시니까 동작이 작아졌죠. 그러면 억지로 크게 공간을 장악하기 위한 억지를 만들어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시는 것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다가요. 섬에다가 원숭이의 울타리 개념도 있고, 여러모로 해석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름답게 쌓아봤어요. 달리 제가 할 게 없으니까요. 조심스럽게 ‘위에서 해보시면 어떨까요? 어떠세요?’ 했더니 괜찮다고 하셔서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했죠. 그리고 연습실 바로 옆에 또 공간이 있는데 구조물만 한 의자 분량이 또 있었어요. 높이도 비슷하고요. 그래서 쌓아놓고 해보게 된 거죠.

 

처음에는 구조물이 시각선이 되니까, 단도 안 쌓고 아예 바닥에서 보는 걸 생각했어요. 제가 해도 올라가겠다고 하면 올라갈 수 있는 거고, 제가 봐도 괜찮으면 관객한테도 제안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근데 제가 봐도 불편해서 단을 쌓게 됐고요. 현실적이고 기능적인 문제 때문에 이게 최적화된 거였어요. 어느 정도의 관객 수는 있어야 하고, 그래서 그나마 한 칸 미룬 거죠. 앞줄에 계신 분들이 조금 불편하실 수 있지만 그러나 참을 정도의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연출로서 가고 있는 출구, 방향

적극 저는 제가 최근에 저의 연극이 어디로 가고 있나 생각했을 때, 기생 연극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장르에 기생하는 것. 연극계에서 경쟁하는 게 아니라 음악 장르에서도 연극을 되게 필요로 해요. 연극 연출가가 대본을 들이대면서 장악하는 것은 할 수 없잖아요. 연극적인 게 필요한 거죠. 미술에서도, 갤러리에서도 액티브하고 이런 것을 설명하고 싶을 때 연극적이라는 단어를 쓰죠. 그니까 연극은 다른 장르한테는 재밌는 거예요. 재미없으면 쓸 이유 자체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연극을 하고 싶은 건 재밌고 흥미로운 것 때문인데요. 그런데 사실 연극 안에서는 책임감, 해야 하는 것에 깔려 있는 게 있죠. 그래서 장르들에 기생하면서 그들이 기대하는 연극, 어떻게 보면 그것이 가장 본질적인 지점이 있어서요. 그런 지점을 같이 찾는 작업을 할 때, 연극의 스케일이 커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예를 들면 제가 어떤 무용 공연을 가서 작업을 했어요. 근데 모든 공은 안무가한테 가는 거죠. 음악 공연을 가서 제가 다 했어요. 근데 음악 감독한테 모든 공이 다 가죠. 억울하고. 이런 건 어쩔 수 없는데요. 작업은 충만함 같은 게 있죠. 이번에는 연극 안에서 제가 연극을 한 것보다도 연기라는 것에 들어가서 연극을 기생해서 한 거죠. 그런 지점이 좀 있습니다.